60년 전을 회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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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7-20 14:57 조회60회 댓글0건본문
김천종 (제41회, 건축)
전, 전라북도 건설국장
나의 고향은 「울고 왔다가 울고 간다」는 여담이 추억되는 구천동 무주입니다. 이 곳에서 어린 시절부터 중학교까지를 보낸 내 삶에는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을 보낸 정 든 고향이기도 합니다. 중학교 선생님으로 계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큰아버지는 당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으 니 교육자 가정에서 철저한 훈육으로 자라났습니다. 중학교 졸업에 즈음하여 나의 진학 방향 을 묻는 부모님에게 나는 어린 생각이었지만 무조건 장래에 공학도, 기술자가 되겠다는 의지 를 밝히고 전주공업고등학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무주에서 전주를 가려면 버스를 무려 7시간이 걸리는 장거리였습니다.
울퉁불퉁 자갈길에, 진안에서 한 시간 쉬고, 아흔아홉 구비 곰티재를 넘어서야 전주에 입성하니 꼬박 하루를 간다 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1956년 3월 어느 따스한 날, 어린 꿈나무 480명 신입생들은 꿈과 희망을 안고 입학식을 맞이 하였으며 그 자리에서 영광스럽게도 제가 신입생 대표 인사를 한 추억이 있습니다. 첫 학교생활은 선배님들 교실에 불려가 노래부터 불러야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당시 공업학교는 지금의 진북동 학생회관 자리에 일자형 낡은 2층 건물로서 교육시설은 낡은 칠판, 낡은 책걸상으 로 턱없이 열악했었습니다. 당시 재학시절 공업학교가 특별히 자랑할 만했던 것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기악부 관현악 단이 있어 전국 경연은 물론 특히 시가행진 시 그 행진곡은 온 전주시민의 박수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한 전 주공고 축구부는 전국을 재패할 정도로 실력과 명성이 높았으며 응원 때마다 문고리, 레베루, H2 O, 모본단의 구호를 외치며 3.3.7 박자를 손바닥 아프게 친 기억이 있었고 지금도 그 전통은 이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공부에 전념한 덕분에 저는 3년 내내 장학생 의 혜택을 받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전주 공고를 통한 형설의 공이 제가 공직에 입문한 후 우리지역 건설의 책임자직 책을 맡았을 때도 모든 지역 개발사업에 애향심이 더해졌던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전주 공업고등학교는 작년으로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와 많은 동문들이 배출되어 이 나라 곳곳에서 그 명성과 빛을 발하고 있어 우리 모두들은 크나큰 자긍심을 갖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조상님들, 선배님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농업입국, 공업입국을 이미 완성하였고 이제 4차 산업혁명 시 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모교의 교훈대로 지성, 용기, 창조의 학업 정신으로 매진한다면 모교의 앞날은 말할 것도 없고 젊은 후배들의 앞길 도 100차선 확 트인 도로를 달리게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60년 전을 회고하며… 앞으로 100년 후를 그려봅니다. 전주공고 파이팅! 전주공고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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