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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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7-20 14:54 조회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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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천 (제40회, 건축) 총동창회 제30대 회장 전, 덕진구청장

 

내가 전주공고에 입학하던 해인 1955년. 당시 건축·토목·화학·방직 각과 2반씩 480명 을 선발했는데 학교 교실 환경이 너무 열악하여 본관은 붕괴위험이 있어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나무받침대로 단단히 받쳐 놓았고 교실도 마찬가지로 걸으면 삐그덕 소리가 날 정도 였다. 입학동기들도 서로 나이 차이가 많아 심지어 장가든 동급생도 있었다.

 

군소 모임이 많았는데 공부만하는 친구! 싸움질만 하는 친구! 등 각양각색 이였으며 편입 생이 유달리 많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당시 측량(평판수준)을 운동장을 돌며 실습했는데 졸업 후 직장생활에서 그때의 실 습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당시 화학실험실 실습은 전공과 구별 없이 실시되었는데 건축과 학생이 아카시아 꽃을 따다가 하룻밤을 재워 실습 재료로 가져온 것 까지는 좋았는데 향수를 만들어 놓고 보니 썩은 냄새가 났던 것이 제일 잊혀 지지 않는다. 학교가는 길은 온통 채소밭으로 액비(인분)냄새가 진동했었고 비만 오면 지름길을 피해 한참을 돌아서 등교하 기도 했다.

 

졸업을 앞두고는 모두들 머리카락 자라기만 학수고대하며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머리카락을 뽑아 길이를 재어 보던 일 등 등… 학교를 졸업한지 60년이 넘어선 지금 같이 공부하던 학우들의 얼굴이 희미하게 머리를 맴돈다. 1963년 1월 26일 전역 후 1963년 3월 30일에 공학도로서 공직에 입문하여 부안군청을 시작으로 전라북도청, 전 주시, 군산시, 익산시 등을 거처 전주덕진구청장을 끝으로 36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 하였으며, 과정에서 이리역 폭발사고 복구와 사고 직후 새 이리 건설 등 어려울 때 남이 싫어하는 일들에 최선을 다 했던 지난날이 공복으로서 보람과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노인이 아닌 어른으로 대접받기 위하여 노력하고, “하면된다” 나를 이기는 인내가 있어야 남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신조아래 인생의 황혼기에 급변하는 시대에 남과 더불어 부응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하고 있다. 삼만칠천여 동문여러분 모두가 사회에 필요한 존재감을 얻기 위하여 자기 하는 일에 충실하고 긍정적이면서 남 을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아니하며, 배려와 용서로서 즐겁게 살아가는 공학도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 옛날 전주공고 재학시절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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