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학창시절!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7-20 14:53 조회92회 댓글0건본문
박문석 (제39회, 토목)
전, 경찰서장
제가 남원중학교 재학 당시 전주공고 교감이었던 이중로 선생님이 교장으로 승진하여 우 리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축하의 뜻으로 전주공고 관악대가 남원 시내를 행진한 후 남원극장에서 기념 연주회를 개최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 학생들은 물론 시민들에게도 생소한 작은 문화 충격이었던 기억이 난다. 저 또한 소망했던 토목기술자가 되기 위해 모교에 지원하여 입학하였고, 그렇게도 멋지 게 보였던 악단에 입단하여 열심히 공부하면서 연습하였습니다.
국가 기념일 등에는 반드 시 우리 관악대가 선두에 서서 전주시가지를 행진하면서 전주시민으로부터 우렁찬 박수갈 채를 받았으며, 저는 악기 중에서 제일 큰 수자폰을 매고 멋진 행진의 주역이었던 추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을 연습에 몰두하다보면 소망했던 토목기술자가 되기에는 학습부진으로 차질이 생 길 우려도 있고 해서 관악부 생활은 1년간으로 접어야 했습니다. 학도호국단원으로서 군사훈련에 열중했던 추억으로 2학년 때에는 홈룸실장(반장)을 맡으면서 교우들과 많은 교 분을 갖고 학업에 열중하였으며, 3학년 때에는 학도호국단 부연대장 직책을 맡으며 전교생을 지휘, 목총을 소지하 고 군사훈련에 열중하였습니다. 백○○ 교관, 이○○ 교관 선생님들의 지휘 하에 기교에 넘치는 맹훈련을 한 결과 우리 학교는 항상 전북 선두권으로 A+등급을 획득하였습니다. 과정에서 당시 부끄러우면서도 소박한 용기에 동참했던 일로서,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가정형편이 어 려워 납입금을 제때 못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기말고사를 앞두고 납입금을 내지 않은 사람은 기말고사에 응시할 수 없다는 학교방침이 나오자 “돈 없는 것도 서러운데 시험까지 못 보게 한다.”는 거센 반발로 타종소리에 맞춰 학생들 이 모두 교실에서 나와 귀가해 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경찰에서 학생간부들을 연행하는 일까지 벌어져 결국 모두 시험에는 응시하게 되었으나 당시 학생회장은 퇴학처분이 내려져 이리의 모 고등학교에 재 편입하기도 했다. 1957년 3월 20일에 졸업 후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귀향해 보니 당시 사회는 민주화운동으로 4.19 혁명이 발 생하여 극도로 혼란하였고, 당시 공화당 정부(이승만 정권)는 몰락하여 윤보선 대통령을 정점으로 민주당 정권이 수립되었습니다. 그러나 4.19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로 각처에서 매일 수 없이 사건·사고가 발생하여 치안질서는 엉망이었습니다. 경제는 바닥을 치고 있었고 취업은 바늘구멍이다 보니 우선 호구지책을 걱정하는 것이 1순위였 습니다. 저는 경찰관 모집공고가 있어 응시하기로 결심하고 부평 소재 경찰전문학교에서 경찰관 시험에 응시, 수많은 경 쟁을 물리치고 합격하여 수도 서울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관이 되었습니다.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명칭을 바꾸고 윤 보선 대통령과 그의 부인 공덕귀 여사를 모시는 청와대 경호결찰관이 되어 경비근무 중 이른 새벽에 5.16 군사 혁명이 발생하여 무장을 반납하고 청와대 근무를 강제 해산 당하였습니다. 동대문서로 배치되어 수도치안을 담당하 게 되었습니다. 그 후 청와대 근무 경력을 인정받아 이승만 대통령이 거주하던 이화장 경비근무에 전보되어 성실 하게 근무를 마친 후, 고향인 전북경찰로 발령 받았습니다.
전라북도 내 여러 경찰서를 전전하면서 타 학교(인문계) 출신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순경에서 총경까지 승 승장구하였고, 도내 여러 지역의 경찰서장으로 근무하며 우리 공고 출신 선·후배들과 함께 호흡하였습니다. 우리 전주공고 출신으로서 긍지와 명예를 드높였던 추억은 정말 자랑스럽고 당당하기만 했던 추억으로 잊을 수가 없습 니다. 졸업 후에 남길만한 추억으로 졸업 후 30년 만에 동기들과 모교를 방문했던 행사로서 2년 선배들인 1955년 선배 동창회(회장 이대문)에서 창안 및 주축이 되어 졸업 후 30년이 되는 해에 처음 행사를 실시하였고, 후배 동문들에 게 전수되며 전통적으로 행사를 추진하고 있음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57년 동창회의 대회장을 맡아 동기졸업생을 대표하여 실무진을 구성하고 졸업3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함 에 있어서 애로와 보람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연락망을 통한 동문들의 확인 작업이 제일 어려웠고, 몰라보게 변 한 동문들의 상면을 보고 몹시 기뻐하며 반가워하는 모습 등은 영원히 기록될 것이며, 이러한 행사의 전통은 우리 전주공고 동문들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으며 영원히 계승될 것입니다.
아울러, 100년이라는 역사를 자랑하는 모교의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을 총동창회가 주관하여 성공적으로 일궈 낸 하나의 작품은 누구나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며, 본관에 조명된 역사관에 담겨진 우리의 발자취! 본관 앞에 자리 잡은 100주년 기념 조형물! 이 모든 것들이 자랑스러운 증표가 되어 영원하고 또 다른 100주년을 맞이할 우리는 뭉 치고 뛰고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