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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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제38회 동기와 모교가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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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7-20 14:47 조회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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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난엽 (제38회, 건축) 전, 해리고등학교 교장

 

1965년 4월 당시 전주공고 교사로 재직 중이던 한기창(제24회, 가구) 선생님의 편지를 4회에 걸쳐 받은 뒤 광주 공업전문학교(5년제) 교사직을 사직하고 모교인 전주공고 교사로 부임하였다.

 

당시 건축과 2급 정교사 자격이었는데 최득엽 교장선생님의 권유가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 모교에는 전주공고 동창회 총무 최병일(제34회, 토목) 영어교사와 재무를 맡은 조문 형(제36회, 화학) 전기과 교사가 재직 중이었는데, 선배 두 분이 모교를 떠나게 되어 나는 건축과 교사로서 총동창회 총무, 사무총장 등을 맡아 열과 성을 다하였으며, 모교에 재직 기간이 동문으로서는 최장기간인 23년간을 공학도 후배들의 양성을 위해 교편을 잡았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과거 전주공고 동창회의 대단했던 결속력이 새삼 그리워진다. 당시 진북동 모교에는 건축, 토목, 화학, 방직, 기계, 전기 6개학과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나는 건축과 생활지도 담당교사로 매일 교문에서 학생복장 단속과 밤 9시 이후에는 학생통행금지 단속을 했는데 요즘보다는 학생들의 사 생활을 엄격하게 규율하던 시기였다. 당시 정부에서는 공업기술 향상을 위해 기능경기대회를 개최하여 공업기능인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던 때로서 1980년대 초 대구공고에서 열린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우리학교가 건축설계제도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던 것 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또 당시 대회장에 갑자기 대통령이 방문하여 행사장을 둘러보던 중 불쑥 내게 악수를 청하여 순간 당황했던 기 억이 난다. 그 후 나는 학생기능교육에 대한 공으로 1987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표창을 받고 청와대 오찬까지 초청 받았으니 모교인 전주공고와의 인연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전주공고는 영원한 내마음속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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